1. 지표란 무엇이고, 왜 지표가 필요한가요?

지표란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 또는 현재 수준이나 진행 과정 등을 정량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지표란 대상을 양적으로 ‘측정’한 값을 의미합니다. 매출액이 되었건, 프로젝트 진행율이 되었건, 상품 반품률이 되었건 무언가를 측정하는 이유는 측정을 통해 대상을 더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 입니다.

즉 측정은 그 자체로 목표가 아니라 관리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수단이라는 의미입니다. 현재 상태, 진행 정도, 목표 수준 등을 수치로 나타내면 일이 계획대로 되고 있는지, 효율적으로 진행되고 있는지, 우리가 잘 하고 있는지 못하고 있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가 없듯 측정도 비용이 들기 때문에, 측정의 목적에 맞추어 적절한 방식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100대의 기계가 돌아가는 공장에서 기계마다 가동효율을 평가하여 성능이 떨어지는 기계를 사전에 파악하기 위해 처음으로 모니터링을 한다고 가정해보겠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상태인데, 만약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기록하려고 한다면, 기계마다 측정하는 사람이나 모니터링 시스템이 붙어서 어떤 주기로 제품을 완성시키는지 기록해야 합니다. 기록된 자료가 오류없이 정확한지 확인도 필요하겠죠. 그렇게 기록된 100대의 기계에 대한 각각의 자료를 계속 수합하는 과정도 필요하구요. 이 모든 과정을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해주려고 하면, 관리를 통한 효용보다 관리 비용이 더 커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몇 시간 또는 하루 단위로 각 기계가 몇 개씩 완성품을 만들었는지 파악하는 것으로도 모니터링하기에 충분하다면, 훨씬 적은 비용으로 기계별 성능 모니터링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기계의 성능을 모니터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그 기계가 언제 도입되었고 실제로 얼마나 가동되었는지, 생산성이 낮아지는 요인은 무엇인지, 가동률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무엇인지와 같은 정보가 필요하다면, (기계의 최근 생산성을 더 잦은 빈도로 측정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지만) 그 정보 이외에도 도입시기나 과거의 가동 기록 등에 대해 일정 기간 이상의 관찰 데이터도 수집되고 관리되어야 합니다. 

이처럼 지표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얼마나 정확하게’ 또는 ‘얼마나 신속하게’ 알아야하는지, 이 정보를 가지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가 함께 정의되어야 합니다.

 

2. 지표는 언제 수립하나요? 

제품의 기능을 개발한다면, 제품의 상세한 스펙이나 기능을 기획하기 전에 ‘고객이 겪고 있는 불편이 무엇인가?’, '어떤 고객이 그런 문제를 겪고 있는가?', ‘그 불편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리의 비즈니스에 어떤 가치가 있는가?' 를 정의하는 단계에서부터 어떤 지표를 수립할 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표는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의 목표가 무엇인지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수단이기도 합니다.

여럿이 함께 협업하는 과정에서 궁극적으로 무엇을 달성하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는지 공동의 목표를 선명하게 해주죠.

(사족이지만 이런저런거 개발이고 뭐고 다 하고 나서,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 하니 이런저런 지표 좀 주세요~ 하는 상황에 던져질 때, 심지어 그 지표가 죄다 vacant metric같을 때....DA로 일하면서 그만큼 현타가 오는 순간도 없는 거 같습니다....)

 

3. 좋은 지표는 어떻게 세우나요? 

좋은 지표란 상황, 제품 특성, 비즈니스 모델 등에 따라 다릅니다. 비즈니스 지표인지, 프로덕트 지표인지에 따라서도 상당히 크게 달라지고, 이미 존재하는 프레임워크도 너무 많죠. 어디에선 답이었던 것이 어디에선 전혀 쌩뚱맞은 지표가 되기도 합니다. 

똑같은 쇼핑검색 서비스의 개선이라도, 유저가 더 많은 몰랐던 물건을 발견하게 해주고 더 오랫동안 체류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지, 아니면 찾는 물건에 도달하는 시간을 줄여 궁극적으로 구매전환까지의 퍼널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인지에 따라서 동일한 기능이어도 서로 전혀 다른 데이터를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게 됩니다.

비즈니스의 특성이나 성장모델에 따라서 무료유저가 가치인 경우도 있지만, 단순한 비용인 경우도 있구요. 

그래서 결국 지표란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의 상태를 포착하고 측정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문제정의가 명확해야, 우리가 무엇을 측정하고 싶은지, 그걸 알기 위해 어떤 숫자를 어떻게 봐야하는지를 구체화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하지 못할때는 좋은 지표를 설정하기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 지금 하는 그 일을 통해 해결하려고 하는 문제가 무엇인가요? 
  • 그게 해결되면 누가 어떤 베네핏을 느끼게 되나요? 
  • 그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되나요? 
  • 그 문제가 해결되면 우리의 비즈니스에는 어떤 임팩트가 있나요?

이런 질문들에 답할 수 있는 여러가지 가설들을 고려하면서, 그 과정에서 필요한 기초 데이터도 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문제정의를 뾰족하게 하면서 기대하는 임팩트가 무엇인지를 합의할 수 있고, 그 임팩트를 측정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데이터가 무엇이고 그 데이터를 보는 가장 적합한 관점이 무엇인지를 반영하여 지표를 수립하게 됩니다. 

 

4. 좋은 지표의 공통 요건

좋은 지표는 우리가 해결하고 싶은 문제의 status를 잘 포착해주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하는 일들(input)과 실제로 문제에 미치는 영향(output)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즉 문제정의를 기반으로 문제와 해결책들의 임팩트를 잘 보여주는(=목적과 성과를 드러내는) 지표입니다. 

저는 그 이외에 가장 중요한 것으로 다음 두 가지를 고려합니다.

  • Measurable : 측정가능한가? 측정이 지나치게 어렵거나 비용이 많이 들지 않는가? accuracy는 얼마나 높아야 하는가? proxy로 고려할 수 있는 대안이 있는가?  

아마 이 부분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매우 다를 것 같은데, 리소스가 제한된 스타트업 환경에서는 정확도와 비용, 그리고 속도 간의 트레이드 오프를 인지해야하기 때문에, 측정가능성에 대한 판단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아무래도 충분한 인프라가 갖춰진 환경이라면 훨씬 덜 신경써도 되는 부분이겠죠. 

  • Sepcific : entity 레벨에서 대상/기간/속성/범위 등이 구체적으로 정의되어 있는가? 

똑같은 지표를 보고도 서로 다른 정의를 염두에 두고 있어서 완전히 미스커뮤니케이션하는 경우가 제법 생깁니다. 특히 비율 등을 많이 사용하게 되는데, 같아 보여도 사실 분모 자체가 다르거나, 시간축의 기준의 완전히 다르다거나 하는 경우도 흔하고, 때로는 a가 하던 데이터 작업을 b가 하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문제는 대부분 충분히 구체적이지 않은 데이터 정의에서 나옵니다. 

 

5. 사족

  • 좋은 지표는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좋은 문제정의 없이 좋은 지표는 나올 수 없습니다.
  • 경영학의 왕 피터 드러커가 했다고 회자되는 말 중에 “측정할 수 없다면 관리할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사실 피터 드러커는 그렇게 말한적 없다고 합니다ㅋㅋ 정량화할 수 없다고 해서 중요하지 않다거나 관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니니까요. 눈에 보이지 않고 지표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주목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는 점도 간과하지 않아야 겠습니다. 

 


 

  • 원문 작성일 : 23년05월30일
  • 사내에 발행했던 데이터레터 중 한 편으로, 공개를 위해 내용을 약간 수정하였다. 사내에 발행한 버전에는 실제로 회사 프로덕트를 가지고 만든 예제와 여러가지 지표 프레임워크에 대한 구체적인 소개도 들어갔음. 

'테크회사직장인 > 데이터어쩌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A/B 테스트의 기초 1. ‘실험’  (0) 2023.08.13
Posted by SashaLee
,

 

이미지 출처  https://towardsdatascience.com/how-to-conduct-a-b-testing-3076074a8458

 

A/B테스트,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을 이야기할 때, 정말 지겹도록 많이 듣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흔하디 흔한 A/B 테스트가 정작 제대로 수행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뭅니다.

A/B 테스트는 실험이 제대로 설계되지 않으면 이 테스트의 도입 취지에 맞춰 더 좋은 의사결정을 하는데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리소스만 낭비하고 오히려 잘못된 정보로 사람들을 잘못된 판단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몇 번의 시리즈를 통해 이 A/B 테스트를 이루는 중요한 개념들을 설명하려고 합니다.

 

A/B 테스트가 뭔데??

A/B 테스트는 무작위 대조 실험(RCT: 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라는 응용통계 기법을 제품 개발 등에 적용할 수 있게 간소화한 버전으로, 일종의 실험 방법론입니다.

‘무작위’ ‘대조(통제된)’ ‘실험’ 이라는 각각의 단어가 A/B 테스트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오늘은 이 중 쉽지만 가장 중요한 실험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설명해보려 합니다.

 

여러분, 혹시 학교 다닐 때 과학시간에 실험 했던 것 생각 나시나요?

화산을 폭발시킨다거나...

이런 실험을 왜 했을까요? 특정한 화합물 A와 B를 조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배우기 위함이었을까요?

실험을 직접 해보는 근본적인 목적은 사건을 발생시키는데 필요한 조건이 갖춰져 있을 때 매번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즉, 물을 가열하면 빨리 증발한다는 가설을 반복해서 확인해보면서, ‘Y라는 결과의 원인은 X’라는 답을 얻으면, X를 반복함으로써 Y역시 재현될 수 있다(젖은 옷에 열을 가하면 빨리 마른다)는 지식을 얻는 것이죠.

즉 실험의 핵심은

  • X가 Y를 일으킨다는 가정을 확인하여
  • (X가 정말 Y의 원인이라면) X의 반복으로 Y도 재현될 수 있다는 지식

을 얻는 것입니다.

A/B 테스트가 ‘지식’이 아니라 ‘실험’인 이유는, 우리가 바꾸는 어떤 조건이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는 인과성에 대한 가설을 확인하는 과정이기 대문입니다.

이 ‘실험’이 의미하는 바가 좀 감이 오시나요?

성공적인 실험조직의 사례

A/B 테스트의 가장 유명한 사례는 bing의 검색엔진 결과 화면입니다.

검색결과의 길이를 조금 늘린 버전을 보여주자는 굉장히 사소해보이는 아이디어는 너무 사소해보여 우선순위가 몇 달이나 밀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디어를 빠르게 실험하려고 나선 한 엔지니어 덕분에 실험이 이루어졌고, 실험의 분석결과 핵심적인 사용자 경험을 손상 시키지 않고도 매출을 12%나 증가시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는 빙 전체 제품에 적용되었고 빙 역사상 최고의 매출을 창출하는 아이디어가 되었습니다.

검색결과를 이러저러하게 바꿔 보여준다(X)가 사용자의 전환율을 높인다(Y)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검증하고, 아이디어의 임팩트를 정량화하여 제품과 비즈니스를 성장시킬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가 지금 임팩트를 측정하고 싶은 X 말고도, Y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 너무나 많습니다.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지표가 개선되거나, 악화되는 경우도 생각보다 정~말 많은데, 그럴때조차도 의사결정을 위한 실험은 실험결과가 우연이나 다른 요인 때문이 아니라 X 때문이라는, Y에 대한 ‘인과성’을 보장해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충분한 샘플수, Bias가 최소화될 수 있는 실험 설계, 실험 결과에 대한 통계적 검증과 같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때로는 실험을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떨때는 실험을 통해 기대할 수 있는 최고의 결과나 최악의 결과에 비해 실험 자체에 드는 비용이 너무 클 때도 있구요. 특히나, 조직적인 차원에서 실험을 통해 제품을 개선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실험 결과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을 때 그 아이디어를 폐기할 수 있느냐 인데, 실험을 해보면 거의 대부분의 아이디어가 임팩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기 때문에 실험 역시 시스템적으로 효율화해야 합니다.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우버, 에어비앤비와 같은 내노라하는 세계적인 팀에서도 실험을 통해 정말 효과를 검증하는데에 성공하는 아이디어는 20%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미 어느정도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상태라면, 정말 작은 지표의 개선도 큰 임팩트가 되기 때문에 정교한 A/B 테스트 역시 훨씬 더 그 가치가 큽니다. 

 

반면 리소스가 제한된 스타트업 환경에서 백로그에 할 일이 쌓여있지 않은 팀은 정말 드물텐데요, 그때 A/B 테스트의 가치는 '임팩트가 더 큰 일을 찾기 위해서' 입니다. 그런데 테스트 결과를 보고 100개 중에 80개를 버리는데, 매번 개발을 다 하고 결과를 보고나서 개발 다 한 피처를 버린다? 이건 린스타트업이 A/B 테스트를 제대로 최적화한 상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터레이션을 반복하면서 실험에 드는 비용을 점점 줄이고, 점점 더 적은 리소스로 의미있는 데이터를 얻을 수 있는 방법 등에 대한 개선된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A/B 테스트는 구성원들에게 쓸데없는 일만 늘리고 태클만 거는 거추장스러운 무언가가 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실험은 최소한의 비용을 들여 빠르게 실행해야 하고, 꼭 개발을 하지 않더라도 임팩트를 측정할 수 있는 더 작고 날렵한 방법들을 찾아내야 합니다. 또 UX가 중요한 B2C 프로덕트인지, 아니면 확장성과 유연함이 중요한 B2B 프로덕트인지에 따라서도 A/B 테스트의 목표와 가치 역시 달라진다는 것 또한 생각해봐야할 것 같습니다. 

 

 

관련해서 더 많은 내용을 알고 싶으시다면 다음의 컨텐츠를 추천합니다. 

 


  • 원문 작성일 : 23년02월21일
  • 사내에 발행했던 데이터레터 중 한 편으로, 공개를 위해 내용을 약간 수정했다. 사실 테스트 드리븐이 가능하려면 우선 데이터를 보고 의사결정하는 문화가 이미 어느정도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어떤 지표를 어떻게 볼 것인지와 같은 리터러시가 어느정도 올라와있어야하고, 인과성에 대한 개념이 잡힌 뒤에야 의미있는 테스트가 가능하다. 막말로 vacant metric 놓고 A/B 테스트 백날 해봐야 의미 개뿔 없음.
  • 회사에서 왜 비즈니스 지표 뿐 아니라 제품 engagement 지표를 봐야하는지 설명하고 주장하면서 C팀 설득하는 단계를 증말 힘겹게 겨우겨우 넘어서, 이제 조금씩 PO들이나 PD들이 봐야하는 지표들을 구체적으로 잡아가는 단계를 헤쳐나가고 있는 주제에 내가 이런 글을 공유하는거 너무 민망한 일이지만...애초에 이 글은 데이터로 일하는 경험이 전혀 없는 비데이터 직군 분들에게, A/B 테스트의 파운데이션에 해당하는 개념들을 설명하기 위해 쓴 입문용이니 그냥 철판 깔고 퍼블리시 한다. ㅎㅎ 

 

Posted by Sash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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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스터디도 운영하고, 스타트업이나 데이터 관련 행사나 밋업이 있으면 가서 구경도 하면서 업계의 주니어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자주 있었다.


근데 일에 욕심이 있고, 능동적이고, 본인이 일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주니어들은 열에 아홉이 본인이 진행하는 일의 필요와 중요성을 회사도 동료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자기가 맞고 이게 중요하고 자기는 중요한 일을 하는데 남들이 적극적으로 안 따라준다고 억울해하고 자기 커리어를 고민한다.


근데…사실 그건 일을 잘 하는 것도 뭣도 아니다. 그거 자기가 보기에나 중요한거다. 그걸 해서 뭐가 도움이 되고 어떤 결과를 낼 수 있는지 대상에 따라 그 사람들의 관점에서 설득하는데 실패한 거고, 정말 그게 회사에 중요한 일인지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특히나…님 뭔데…? 님 뭐 대단한 성과 내고 역량 보여준 적 있나요? (주니어한테 회사가 이런거 기대하지도 않고 기대하는게 이상한거고 주니어가 그런걸 할 수 있으면 오히려 도망쳐야 할지도….)


자기 권한과 범위를 넘어서는 임팩트 있는 일을 하고 싶으면 스스로 작은 것부터 해서 성과를 쌓아가고, 그거 하는 과정에서 자기 편을 만들어서 그 사람들에게 작은 도움부터(필요하지 않아도) 요청하고, 그게 결과를 내면 그 공을 그 사람들에게 돌려야한다. 그때부터 동료들이 나와 일하면서 자기에게도 성과가 되고 도움이 되는 경험을 하고, 그 일의 의미를 이해하고, 내가 하는 일을 같이하고 싶어하게 된다.


패스트푸드점 알바부터 대단한 박사님들 리서치 서포트까지, 맥락도 일관성도 없이 되는 일은 다 하면서, 올해로 내 손으로 밥벌어먹고 산 지 18년이 되었는데, 돌이켜보니 어디서 무슨 일을 하던, 진짜 일 잘 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일하더라. 그냥 일에, 문제에 집중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보여주고, 그걸로 남들을 설득하면서 범위를 넓혀나간다.


아무리 내가 잘난거 같아도 회사가 무슨 학교 팀플도 아니고 월급 받으며 일하는 프로가 몇십명, 몇백명 모여서, 수십수백만명이 이용하는 제품 만들고 운영하고 그걸로 또 돈을 버는 조직인데, 그거 너무 우습게 생각하고 자기가 당장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그냥 대단한 착각이다.


물론 저도 다 겪은 일...예전에 보스한테 ’우린 뇌수술이 필요한지 그냥 컨디션이 안 좋은건지 모르는 환자한테 제대로 검사도 안 하고 다 그냥 두통약만 쥐어서 보내는 병원 같다‘고 개기다가, 보스한테 ‘근데 아직 아무도 슬아님에게 뇌수술 할 수 있는 의사면허 주지 않았잖아요.‘ 라고 혼났었다. 그땐 내 맘을 몰라주나 억울하고 섭섭했지만, 그 말이 주욱 마음에 남아서 조금씩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던 것 같다.


요새 제일 고맙게 생각되고 힘이 되는 동료들은, 작은 것부터 개선해보려 할 때 그걸 받아들이고 노력해주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다 새로 시작하자거나, 대단한 일을 하자고 나서지도, 남들이 뭐가 틀려먹었다고 볼멘 소리를 하지도 않지만(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그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자기 일 안에서부터 조금씩 더 나은것을 고민하고, 그렇게 일한다. 안 쓰는 코드를 지우고, 틀린 주석을 고치고, PR 메시지를 잘 쓰고, 코드를 변경하기 전에 데이터를 한 번 더 살펴보고, 시간을 들여 한 번 더 고민하고 문서를 남긴다. 이런 노력은 티도 안나고, 당장 일의 처리 속도를 늦추고, 주목도 받지 못하는 일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노력이 결국 다른 동료들과 나중에 동료가 될 사람들이 더 잘 일할 수 있는 환경의 토대가 되고, 이런 것들이 우리가 원팀으로 일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다.

내가 한 번 더 수고해서, 동료가 한 번 덜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맙고 위대한 사람들. 그 사람들 덕분에 큰 변화는 절대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없다는 걸 매일매일 배운다.

Posted by SashaL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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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분야의 고전 중 한 권으로 꼽히는 피터 센게의 <학습하는 조직>은 기업이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상이 ‘학습하는 능력’이 부재한 것에 따른 증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습능력은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조직 차원의 학습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그 두가지는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피터 센게가 말하는 학습 조직을 이루는 요소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책의 요약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

눈앞의 증상만을 해결하느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단편적인 조치들은 당장 효과가 있지만 최종적으로 나쁜 결과를 만든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 인과관계와 역동성을 포괄해서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조직은 단순히 개인들 부분의 합 이상이다. 코드 또는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은 해당 코드만 격리된 상황에서는 잘 동작하는 코드일 수 있지만 트래픽의 규모가 증가하거나, 네트워크 환경이 불안정하다거나, 다른 코드와 함께 동작하게 됨에 따라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때로는 증상만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개발자라면 그런 ‘눈 앞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해결 방식이 지속적으로 쌓였을 때 가져오는 나쁜 결과를 이해할 것이다. 흔히들 ‘기술부채’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다.

개인도 경력이 쌓일수록 시스템 사고가 요구된다. 단순히 빠르게 api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키텍처, 디자인 패턴, 보안 등과 같이 더 넓은 영역에서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기술과 지식이 기대된다. 회사나 조직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직이 커지고 더 많은 일을 해내려면 조직이 단순한 개인의 합 이상임을 이해하고, (달라진) 조직 수준에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역량과 지식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팀은 어떻게 학습하고 성장하는가?

학습의 주체는 개인이고, 조직의 학습은 학습하는 개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로 다른 수준의 숙련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은 어떻게 개인의 성장을 독려할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한 방법은 각자가 가진 지식을 서로에게 전이시키는 것이다. 잘 아는 영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가이드를 주고,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는다. 내가 a라는 솔루션을 선택했을 때, 동료는 b라는 솔루션이 더 적절해보인다면 “왜 b가 아닌 a를 선택하셨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다른 제약 상황 때문에 a라는 솔루션이 더 적절했다면, 나는 그 제약 상황을 설명할 수 있고 그걸 통해 동료는 우리가 다뤄야하는, 혹은 a가 더 적절한 제약 상황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만약 내가 b라는 솔루션을 몰랐다면, 그 피드백을 통해 나는 b라는, (있는 줄도 몰라) 고려해보지 못했던 옵션의 존재를 알게 된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도 ‘질문하기’를 통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문제를 설명하려면 문제의 핵심만 최대한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익숙하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게 된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한답시고 ‘알아서 으레 잘 했겠지’, 혹은 ‘나만 모르는 거고 질문하면 쪽팔린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역량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를 얻을 수 없다. 그건 존중이 아니라 같이 성장할 기회를 버리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b가 더 나은데 a를 선택했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a를 선택한 이유를 배우려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동료를 존중한다면 동료가 설령 b를 몰랐다해도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야 한다.

물론 우린 사람이니까 내가 한 일에 대해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다. 나 또한 맘이 상해 그 자리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명하거나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일도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미숙하다. 하지만 그런 피드백과 질문은 늘 모르던 지식, 간과하고 있는 영역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그런 피드백이 없었다면 내가 아는 a만이 답이라고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성숙하게 반응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꾸준히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이런게 가능하려면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정말 수평적이어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당신은 우리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안정감을 주어야 하며, 조직 안에서 연차와 직급의 차이는 위계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라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한다.

예전에 면접을 봤던 한 회사는 다른 곳에서 CTO를 했던 8년차 개발자가 막내인 시니어 조직이었다. 면접에서 질문 기회가 주어졌을때, 저는 이미 계신 다른 분들에 비해 실력으로는 보잘것없는 주니어인데, 이 조직에 들어와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느냐고 여쭤보았었고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다.

“저도 항상 제가 옳다고 생각하고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편인데, 저 정도의 경력과 지위를 가지게 되면 사람들이 제 의견과 다른 생각은 잘 말해주지 않아요. 또 지금 팀의 구성이 이렇다보니 일을 할 때 서로간에 굉장히 조심스럽죠. 그래서 xx님이 와서 용감하게 아무거나 막 질문해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나에게는 저 말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그저그런 수준에서 멈추는 사람’을 가르게 해주는 기준이 된 것 같다. 내가 듣기 싫은 말도 계속 들을 용기가 있는 사람,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때에도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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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픈채팅방에서 어떤 분이 면접에서 'PMF 와 MVP 중 무엇이 먼저냐?' 라는 질문을 들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지셔서 그에 대한 내 생각을 간략히 적었는데 그 내용을 다시 한 번 정리해둔다. 

 

1. PMF(Product - Market FIT)와 MVP(Minimum Viable Product)는 무엇이 먼저오고 다른게 뒤에오는 종류의 개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PMF를 찾기 위해서는 시장에서 지속적으로 제품을 실험하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여기에서 애자일하게 진행하기 위해 MVP를 수립하여 빠르게 출시-검증-피봇팅/개선을 반복하는 것이지 그 두가지를 같은 선상에 놓고 무엇이 먼저 오고 다음에 다른 게 오는 그런 종류의 개념은 아니다. 

  

2. painpoint는 존재하지만 솔루션은 없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찾아 기존에 없던 시장을 만들어가며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이미 검증된 시장에서 충분히 차별화된 전략과 상품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것인지에 따라서 다르다고도 할 수 있을텐데, 그렇다고 이 두가지가 서로 배타적인 것은 아니다.

  

3. 사실 PMF를 찾았다면 굳이 MVP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이미 유저와 시장의 니즈가 검증된 제품이라면 최소기능제품이 아니라 제품의 완성도와 기능고도화에 집중하면서 시장에서 어떻게 우리 프로덕트만의 고유한 피처를 만들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 이 단계에서는 어떻게 우리 프로덕트가 시장에서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하고, 어떻게 우리 비즈니스에 해자를 만들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보통 진입장벽이 높은 시장의 경우(따라하기 힘든 원천기술이나 대규모의 인프라가 필요한 경우, 법으로 보호받는 라이센스 등과 결부되는 경우 등이 여기에 해당) 대규모 자본투자를 유치하여 기술 또는 고정비용에 대해 공격적으로 투자하여, 기술우위를 확보하거나 전체 시장을 빠르게 장악하는 것이 그런 방법이 된다. 진입장벽이 낮은 시장이라면 브랜딩을 통한 포지셔닝이 엄청 중요할 것이고, 생산비용 절감을 통한 효율화 또한 매우 핵심적인 이슈가 될 것이다. 

  

4.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 내용을 정리하다 보니 개인적으로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서 쿠팡의 미래가 그다지 밝지 않다고 느껴왔던 이유도 좀 더 명확해진다. 쿠팡의 경우 이미 확실한 니즈가 존재하는 시장에 '로켓배송'이라는 자신들만의 피쳐를 무기로 대규모 자본을 유치,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통해 성장한 상태지만 적자폭 역시 줄이지 못하고 계속 증가하는 상황이다. (덕분에 주가도 꾸준히 우하향중...) 쿠팡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은 아마존도 15년동안 적자였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존이 미국 시장을 장악해나가던 시절과 지금의 한국 시장은 성격이 너무 다르다. 미국의 경우 거대한 면적의 땅덩어리 때문에 배송에 필요한 물류인프라를 갖추는데 필요한 비용이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컸고 시장지배자도 없던 시장이다. 아마존은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장 먼저 시장에 진입했던 경우다. 자본력을 바탕으로 고정비용을 투자하고 나면 그 이후에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에 최적의 환경이었다는 것. 게다가 당시 미국 온라인 쇼핑은 주문하면 기본 2주 걸리고 배송 추적도 당연히 안 되며 기존에 존재하는 배송 인프라도(우체국 포함 각종 택배 서비스들) 엄청 낙후된 상태였기 때문에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지 않았다. 리테일에서 오프라인이 온라인으로 전환된 온라인 침투율도 매우 낮았던 상태다. 반면 쿠팡은 이런 면에서 아마존이 가졌던 그 어떤 이점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더불어 비용 효율화에 관련된 문제도 매우 큰 상태인데, 이 내용은  브런치의 서점직원님이 매우 잘 풀어 써주셨다. https://brunch.co.kr/@fbrudtjr1/44 물류센터 화재나 사고들이 터져 나오는 걸 보면 시스템적으로 효율화해서 코스트를 줄이지 못하니 사람을 갈아넣고 안전비용을 쥐어짜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팡은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고 나면 네트워크 이펙트와 해자가 생기는 모델이긴 한데,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해진다. 

  

(내용 추가)

5. MVP가 (제품이 아니라 피처 단위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개념이라고 생각하기에) 프로덕트의 런칭 시점에만 중요한 건 아니지만, 반면 프로덕트의 런칭 시점에 MVP가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은 틀림없는 거 같다. 모든 VC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고. 최근 공유된 토스 이승건 대표의 PO Session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얼핏 들으면 실패와 마음가짐에 대한 것 같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 교훈은 아무리 완성도 높은 제품을 만들어도 시장이 원하지 않고, 유저가 찾지 않는 제품은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https://youtu.be/Tmj1HEFnK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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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올렸던 글. 아카이빙을 위해 옮겨옴. 2016년 3월 12일 작성)

 

철학과에 입학하면 누구나 '인식론'이라는 제목의 수업을 듣는다. 인식론의 문제의식은 what is knowledge?이다. '지식'이 무엇인지 탐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지식은 '앎'의 의미에 가깝다. 수업에서 배운 것들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질문을 통해 나는 인간의 인식과 지식에 대해서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아주 허약한 근거 위에 있다는 걸 배웠다. 이를테면 내 눈 앞에 있는 이 커피가 진짜 커피일까? 이 잔에 든 것이 커피인지 커피랑 똑같은 맛을 내는 구정물인지 어떻게 알지? 나는 지금 강남역에 있는데 용산에 우리집이 있고 퇴근하고 가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집에서, 아침에 끓여놓고 나온 죽을 먹을수 있을 거라는 걸, 어떻게 알지?

 

일단 우린 이걸 경험적으로 안다. 내가 없는 사이 집이 벌떡 일어나 돌아다녀서 움직인다거나 냉장고가 죽을 갖다 버리지 않는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여기서 앎knowledge이란 경험을 통해 습득한 데이터를 가지고 귀납적으로 얻어지는 거고, 결국 지식이란 건 감각적인 인식 위에 쌓인다는 뜻이다. 컴퓨터에 입력장치를 통해 데이터를 입력하는 것처럼 우린 듣고 만지고 보고 냄새맡고 맛봄으로 세상과 타인, 나 자신의 물성을 알게된다. 싸구려 클리셰같지만 인간이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말은 이런 인식론적 한계를 근거로 할 수 있는 말이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사랑에 대해 이야기할 때 써먹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이를테면, 애인이 나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아는가? 그가 내게 보여주는 말과 행동으로 안다. 마음은 꾸며낼 수 없다고 하지만 글쎄. 마음은 꾸며낼 수 없지만 그 마음이 어디에 있는거지? 그 마음은 내가 보는 너의 말 속에, 너의 행동 속에 있는데.


인간의 감정도 결국 말과 행동으로 드러나는 일종의 패턴에 불과한데 그것을 알고리즘으로 만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인간처럼 반응하는 휴머노이드를 만드는데 강한 인공지능까지는 필요하지도 않을 것이다. 인식적 차원에서 인간과 동일한 존재가, 인간이 타인의 존재를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를 해결해줄 수 있다면, 그때 우린 나 이외의 인간을 어떻게 생각하게 될까? 인간이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타인의 존재를 필요로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사회'라는 건 어떤 의미가 될까? 내가 오세훈(전 서울시장 말고 아이돌 엑소...)처럼 생기고 세상 누구보다 나를 사랑하는것 같이 보이는 비인간의 존재 대신, 종종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면서 날 사랑한다고 입으로만 나불거리는 후진 인간을 굳이 원할 이유가 있을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하는 시점이 도래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인류가 고민하는 속도보다 기술이 우리를 추월하는 속도가 훨씬 빠르겠지. 아이러니하게도 테크놀로지의 위대한 도약 앞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왠일로 철학과 졸업한 게 보람있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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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영로, 영어순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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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순해 4th Edition

혁명적인 직독직해 방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독해교재.발간 이래 30여 년간 영어 학습자들의 필독서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영어와 우리말을 비교해놓은 저자의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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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김영로, 영어순해 Ba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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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순해 Basic

우리가 줄곧 범해온 영문 해석 방법상의 오류를 피하고, 영문 그대로의 의미를 100% 모두 흡수해낼 수 있는 “순해순역” 원리를 담고 있는 책. that절이나 where절 등 이하를 먼저 해석하여 거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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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은 900점을 넘지만 영어로 논문이나 기사를 읽는건 힘든 분들에게 추천. 대학원에서 영어 논문 리딩이 너무 힘들어서 징징댔더니 트위터의 영어전공자인 트친님이 추천해주셔서 보게 되었고, 정말 덕을 많이 본 책이다. 트친님이 영어순해를 3~5회 정도 통독하면 논문 정도는 큰 어려움 없이 읽을 것이라고 하셔서 서점에 가서 책을 살펴봤는데 그때 내 영어 실력으로는 영어순해도 너무 어려웠다. 근데 Basic이 있길래 두 권을 함께 샀고 우선 영어순해Basic을 2회 정도 통독했다. 처음 1회독은 혼자 읽었고, 두 번째는 나보다 영어를 조금 더 못해서 역시 고전하고 있던 대학원 친구와 함께 스터디 식으로 진행했다. 그냥 눈으로 읽는게 아니라 책에 나온 것처럼 모든 문장을 구두로 번역해가며 읽었는데, Basic도 당시의 우리에게는 전혀 쉽지 않아서 매일 아침 기숙사 복도에서 둘이 두시간씩 끙끙거리고 앉아있었음. 결과적으로는 내 영어 실력이 도약하는데 큰 계기가 된 책이었다. 같이 공부했던 친구는 이걸 권해준 이후로 영어공부에 관해서라면 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음...

그 이후로 영어순해도 1회독 했고, 시간이 난다면 다시 반복해서 볼 생각이다. 

 

 

3. 정영한(정박사) 영작/독해 필수 영문법 (인강)

 

외시 영어시험 준비하는 수험생을 대상으로 하는 고급 영문 독해/영작 강의에서 문법 설명만 편집해서 만든 문법강의. 교재와 별도로 영작문 연습 자료가 제공된다. 인터넷 강의 보고, 해당 내용 영작연습을 하고 모범답안을 맞춰보면 된다. 강의가 재밌지는 않음. 수업 스타일도 좀 올드하고 화질도 구리고 교재도 설명이 아니라 예문 위주여서 강의의 설명을 한 번 듣고 이해하고 결국에는 용례를 외워야하는 문법강의이다. 그럼에도 초보자를 위한 문법이나 성문종합영어 이상의, 정말 고급독해나 영작을 위한 문법을 배우고 싶다면 다른 선택지가 없는듯. 

 

매 챕터마다 다루는 해당 문법에 대한 영작 자료 제공하는게 아주 좋다. 이 강의는 대학원 가기 전에 처음 들으려고 시도했다가 재미도 없고 영작이 너무 어려워서 두어개 듣고 환불했던 경험이 있는데, 영어공부 하면서 어느정도 발전한 뒤에 도저히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을 때(특히 작문) 일종의 돌파구로 다시 찾아 들었고 옳은 선택이었다. 강의 시간은 길지 않지만 매 챕터마다 영작하고 답보고 수정하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여유가 있다면 그냥 달별로 쪼개져서 문법+영작+독해가 다 포함된 본 강의를 듣는걸 추천. 

 

정박사 영작ㆍ독해 필수 영문법 (문법강의 편집버전) http://toeic.lawschool.co.kr/nlawschool/lecture/lecture_view.asp?field=18&cateCD_1=5297&cateCD_2=5317&cateCD_3=5319&cateCD_pro=0&course_code=208452&search_type=&search_v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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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박사 영작문 독해 기초반 (4~6월까지 총 4개의 강의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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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안남철, 절대영문법

 

중고서점에서 영작연습 할만한 책 둘러보다가 찾은 책. 이게 추천하는 책들 중에 난이도 제일 낮다. 앞부분엔 문법 설명 + 영작문 연습으로 구성되어 있고, 쉽다. 영작도 위의 강의보다 훨씬 단순한 문장이고, 문법 설명도 구태의연한 설명 대신 좀 더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중고등학생에게 추천해도 될만한 난이도인데, 토플 writing이 20점 초반을 못 넘는다면 이 책으로 기본적인 센텐스 빌딩을 훈련하면 좋을것 같다. 반복해서 쓰는게 핵심.

 

 

5. 해커스 토플 라이팅 intermediate

석사 지원하기 전에 토플 한다고 사놨던건데, 책 내용의 대부분이 그냥 노트테이킹하고 문단 구성하는 연습이라 정말 시험 스킬 연습하는 책이다. writing에 유용한 문법 설명이 10가지 정도 되어있는 데 잘 익히면 써먹기 좋을만한 내용이고, 토플 라이팅에 유용한 표현들이 중간중간 정리되어 있다. 영어문장 + 해석이 써 있는 부분을 가지고 한국어로 된 문장을 워드에 타이핑한 다음에 그 밑에 영어로 영작 해보고, 책에 영어문장 보고 내가 영작한거에서 틀린거 찾아서 고치는 식으로 연습했었다. 난이도는 위의 안남철 절대영문법보단 조금 어렵고 정영한보단 훨씬 쉬움

 

 

6. 성문 영어구문 100

http://www.yes24.com/Product/Goods/1412859?Acode=101

 

성문 영어구문 100

이 책의 목적은 영어의 모든 중요 구문을 총정리하여 이를 되풀이 연습시키고, 나아가 이를 토대로 긴 영문을 스스로 해석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데 있다. 각 항목마다 주어진 예문들은 영어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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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에 자주 쓰이는 구문 패턴 100가지를 정리해둔 책. 유닛마다 간단한 문장으로 핵심 패턴이 나와있고, 밑에 설명이 짧게 덧붙여져 있다. 그 아래에 영어문장+한글해석이 있는데 이 부분을 위에 토플책으로 영작연습 했던 것처럼 한국어로 해석된 문장 먼저 워드에 타이핑하고, 그거 보고 아래에 혼자 영작해보고, 다시 책의 영어 문장을 보고 고치는 식으로 연습했다. 해당 구문이 사용된 지문도 함께 제시되는데, 케바케지만 평균적으로 토플 수준은 된다. 이 책은 걍 다른 거 공부하다가 구문인거 같은데 해석이 잘 안되는게 나오면 여기서 찾아보고 그때그때 그 페이지만 연습했다. 혹은 영작 하다가 비교급이나 특정 구문을 어떻게 쓰는지 잘 모르겠을 때 이 책에 있는지 찾아보고 있으면 그 부분의 예문을 가지고 연습함.

 

 

7. 정영한, 한영번역 연습 기초

http://www.yes24.com/Product/Goods/15021023?Acode=101

 

한영번역 연습기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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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소개한 정박사 인강의 그 정박사가 쓴 영작 책. 영자 신문에 연재했던 번역/영작 코너를 모아서 책으로 만든건데, 아무래도 영자신문에 연재했던 거라 내용도 국제/정치/사회 관련된 문장들 위주고 난이도도 꽤 높은 편이다

 

 

8. 유원호, writing 절대 매뉴얼(입문/실전 두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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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 절대 매뉴얼

저자가 지난 10여 년간 미국 MIT와 UCLA, 그리고 한국에서 강의했던 내용을 모아서 책으로 엮었다. 영작문이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학습자들이 영작문에 필요한 고급 문법에 취약하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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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작에 필요한 문법 오류 등을 잡는데 아주 도움이 되는 책이다. 내용은 너무 좋은데 문제는 이 책은 그냥 읽어보는 책이라서 읽을 땐 도움이 되는데, 이책만 가지고 읽고 이해한 내용을 연습 해보기엔 부족하다. 그래서 읽고 금방 까먹음...작고 얇은 책이고 어렵지 않은데 또 내용 숙지하려면 생각보다 빡세다.

 

 

9. 유원호, grammar 절대 매뉴얼(입문/실전 두 권)

http://www.yes24.com/Product/Goods/19297974?scode=032&OzSrank=6

 

Grammar 절대 매뉴얼 입문편

각 Lesson별 단어를 정리하여 사전을 찾는 번거로움을 덜어 주고, 주요 단어와 표현들을 제대로 이해하였는지 Quiz를 풀면서 실력을 확인해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문제를 풀면서 공부한 내용을 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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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입문만 가지고 있다. 위에 책이 넘 좋아서 이것도 샀는데 다 읽진 않았고 필요한 부분만 찾아봤다. 정말 기초영문법을 빠르게 쫙 정리하기에 좋음.....나중에 실전도 살거임...

 

 

10. 유원호, 영어 듣기 · 발음 절대 매뉴얼

http://www.yes24.com/Product/Goods/24557740?scode=032&OzSrank=2

 

영어 듣기 · 발음 절대 매뉴얼

이 책의 목적은 모든 사람들이 원어민과 똑같은 발음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자 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말의 소리를 잘 이용해 원어민뿐만이 아닌 영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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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리스닝이 안되는 건 대부분 그냥 리딩이 안되고 단어를 몰라서인 경우가 많다. 

귀신이 곡할노릇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모르면, 한국인도 리스닝이 안 되는 것처럼, 영어 리스닝이 안 되는 건 무슨 단어인지 모르고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안들리는 게 대부분임. 원어민이나 어지간한 시험들 기준으로 분당 120~180단어를 말하는데, 문자 중심으로 영어를 배운 사람이 리딩으로 분당 150~200 단어를 못 읽는다면, 소리를 몰라서 안 들리는게 아니라 독해(이해) 속도가 너무 느려서 안 들리는 것.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휘랑 리딩 실력에 비해서 리스닝이 안 되는 경우도 분명 있긴 있고....

그런 분들은 이 책을 보면 된다. 넘 좋은 책임. 유원호 교수님...영어와의 사투에서 한줄기 등불이 되어주신 분....

 

 

11. 성문 종합영어

싫은 책이지만, 그러나, 어지간한 문법적 용례가 다양하게 정리되어 있긴 해서 가끔 찾아본다.....

 

 

12. 이기동, 영어 전치사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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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전치사 연구

영어 학습이 중요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낱말이나 구조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이다. 이와 관련하여 일반적으로 가장 어렵게 생각되는 부분이 전치사와 구절동사(관용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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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치사만 다룬 책. 일반 단행본 정도의 사이즈와 두께다. 전치사 해석을 너무 못하고 쓸때도 적절하게 못 쓰는거 같아서 전치사를 다룬 책을 찾다가 고름. 옛날 사람 교수님이 쓴 책이라 재밌진 않다. 어떤 부분은 오오! 하는 내용도 있지만 어떤 부분은 어거지 같이 느껴지기도 함. 그러나 그림도 많고 글씨도 널럴하고 쉽게 쓰여서 내용 자체는 술술 읽힌다. 전치사에 대한 기본 이미지를 갖는데 도움이 되었다. 근데 이걸 읽었다고 막 획기적으로 전치사를 잘 읽고 쓰게 되진 않고....총 32개의 전치사를 다루는데, 하루에 한 두개 정도 챕터를 읽고 바로바로 그 전치사를 사용한 리딩을 많이 읽으면서 연습을 하면 숙달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었을거 같다. 시간이 있으면 이 책을 한두번 더 읽어봐도 좋을 거 같은데 우선순위가 계속 밀리고 있음.

 

 

 

13. 1100 words 지적 리딩을 위한 필수 영단어

석사 할 때 샀는데 심지어 영어 원서랑 한국어 버전 둘 다 샀다. 한국어 번역 제목을 보고 샀을때는 몰랐는데 사고나서 보니, GRE를 준비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만한 단어책인 Barron's 1100 words를 번역한 거였다;;. 단어 수준도 높고(SAT, TOEFL, GRE 수준) 해당 단어를 활용한 문장과 글이 함께 있는 구성이 좋다. 예문의 수준도 나쁘지 않다. 같은 시리즈로 300 words, 504 words, 601 words 등이 있는데 내 기억에 300이랑 504는 좀 쉬웠던거 같음. 토플 기본단어 정도이거나 그보다도 더 쉬운 느낌?

 

 

 

 

 

 

* 올해 초에 토플 점수가 안 올라 고민하는 후배에게 내가 영어 공부하면서 도움된 책 목록과 공부법을 문서화해서 주었던 걸 약간 보완해서 올림. 나도 영어 공부는 계속 하는 중이고, 여기에 나온 책과 강의들도 계속 참고하고 있다.

 

 

* 최근에 Writing/Speaking은 링글을 통해서 연습하고 있는데, 아래의 추천인 링크를 통해 가입하면 5만 포인트를 받으실 수 있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포인트가 쌓임.

https://www.ringleplus.com/ko/student/landing/home?referralCode=fc9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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