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 분야의 고전 중 한 권으로 꼽히는 피터 센게의 <학습하는 조직>은 기업이 오래 살아남지 못하고 사라지는 현상이 ‘학습하는 능력’이 부재한 것에 따른 증상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학습능력은 조직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역량보다는 조직 차원의 학습에 방점을 찍고 있다. (물론 그 두가지는 완전히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피터 센게가 말하는 학습 조직을 이루는 요소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들을 정리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책의 요약이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했던 생각을 정리한 글이다.
시스템 사고의 필요성
눈앞의 증상만을 해결하느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하는 일은 빈번하게 일어난다.
“단편적인 조치들은 당장 효과가 있지만 최종적으로 나쁜 결과를 만든다”
이런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전체를 구성하는 개별 요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그 인과관계와 역동성을 포괄해서 시스템에 대한 총체적인 관점을 가져야 한다. 조직은 단순히 개인들 부분의 합 이상이다. 코드 또는 소프트웨어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만든 애플리케이션은 해당 코드만 격리된 상황에서는 잘 동작하는 코드일 수 있지만 트래픽의 규모가 증가하거나, 네트워크 환경이 불안정하다거나, 다른 코드와 함께 동작하게 됨에 따라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때로는 증상만 해결하고 넘어가야 할 때도 있다. 하지만 개발자라면 그런 ‘눈 앞의 문제’만을 해결하는 해결 방식이 지속적으로 쌓였을 때 가져오는 나쁜 결과를 이해할 것이다. 흔히들 ‘기술부채’라고 말하는 바로 그것이다.
개인도 경력이 쌓일수록 시스템 사고가 요구된다. 단순히 빠르게 api를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아키텍처, 디자인 패턴, 보안 등과 같이 더 넓은 영역에서 전체를 조망하기 위한 기술과 지식이 기대된다. 회사나 조직 또한 마찬가지이다. 조직이 커지고 더 많은 일을 해내려면 조직이 단순한 개인의 합 이상임을 이해하고, (달라진) 조직 수준에서 사고할 수 있어야 한다.
서로 다른 역량과 지식을 가진 구성원들로 이루어진 팀은 어떻게 학습하고 성장하는가?
학습의 주체는 개인이고, 조직의 학습은 학습하는 개인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서로 다른 수준의 숙련도를 가진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은 어떻게 개인의 성장을 독려할 수 있을까?
가장 단순한 방법은 각자가 가진 지식을 서로에게 전이시키는 것이다. 잘 아는 영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가이드를 주고, 잘 모르는 영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피드백을 받는다. 내가 a라는 솔루션을 선택했을 때, 동료는 b라는 솔루션이 더 적절해보인다면 “왜 b가 아닌 a를 선택하셨나요?” 라고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다른 제약 상황 때문에 a라는 솔루션이 더 적절했다면, 나는 그 제약 상황을 설명할 수 있고 그걸 통해 동료는 우리가 다뤄야하는, 혹은 a가 더 적절한 제약 상황에 대해 학습하게 된다. 만약 내가 b라는 솔루션을 몰랐다면, 그 피드백을 통해 나는 b라는, (있는 줄도 몰라) 고려해보지 못했던 옵션의 존재를 알게 된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도 ‘질문하기’를 통해 조직에 기여할 수 있다.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에게 문제를 설명하려면 문제의 핵심만 최대한 명확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통해 기존의 문제를 익숙하지 않은 관점으로 바라볼 기회를 얻게 된다.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한답시고 ‘알아서 으레 잘 했겠지’, 혹은 ‘나만 모르는 거고 질문하면 쪽팔린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아무것도 질문하지 않으면 서로 다른 역량과 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일함으로서 얻을 수 있는 시너지를 얻을 수 없다. 그건 존중이 아니라 같이 성장할 기회를 버리는 일이다. 내가 보기에 b가 더 나은데 a를 선택했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고, a를 선택한 이유를 배우려면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정말로 동료를 존중한다면 동료가 설령 b를 몰랐다해도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지식을 받아들일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어야 한다.
물론 우린 사람이니까 내가 한 일에 대해 비판적인 피드백을 받으면 기분이 상할 수 있다. 나 또한 맘이 상해 그 자리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변명하거나 방어적으로 대처하는 일도 많았고 지금도 여전히 미숙하다. 하지만 그런 피드백과 질문은 늘 모르던 지식, 간과하고 있는 영역의 존재를 일깨워 주었다. 그런 피드백이 없었다면 내가 아는 a만이 답이라고 아주 오랫동안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성숙하게 반응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꾸준히 피드백을 주는 사람들이야말로 내가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사람들이었다. 이런게 가능하려면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구조가 정말 수평적이어야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당신은 우리 조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안정감을 주어야 하며, 조직 안에서 연차와 직급의 차이는 위계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라는 생각이 공유되어야 한다.
예전에 면접을 봤던 한 회사는 다른 곳에서 CTO를 했던 8년차 개발자가 막내인 시니어 조직이었다. 면접에서 질문 기회가 주어졌을때, 저는 이미 계신 다른 분들에 비해 실력으로는 보잘것없는 주니어인데, 이 조직에 들어와서 어떤 역할을 하길 바라는지, 어떻게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느냐고 여쭤보았었고 다음과 같은 답을 들었다.
“저도 항상 제가 옳다고 생각하고 의견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편인데, 저 정도의 경력과 지위를 가지게 되면 사람들이 제 의견과 다른 생각은 잘 말해주지 않아요. 또 지금 팀의 구성이 이렇다보니 일을 할 때 서로간에 굉장히 조심스럽죠. 그래서 xx님이 와서 용감하게 아무거나 막 질문해주고 솔직하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어요”
나에게는 저 말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이후에도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사람’과 ‘그저그런 수준에서 멈추는 사람’을 가르게 해주는 기준이 된 것 같다. 내가 듣기 싫은 말도 계속 들을 용기가 있는 사람, 그런 말을 듣지 않아도 될 때에도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는 사람은 계속 성장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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